죽림청우(정운면)


죽림청우(竹林晴雨)

정운면(鄭雲葂, 1906-1948)                

1940년대 초

종이에 엷은 색

166.0×146.0cm

부국문화재단 소장


동강 정운면(東岡 鄭雲葂, 1906-1948)이 그린 <죽림청우(竹林晴雨)>는 화면

중심에 우뚝 솟은 산과 그 앞으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다각형 돌기둥이 웅

장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을 준다. <죽림청우>의 이 기이한 풍광은 어느 곳인지 특

정할 수는 없지만 무등산을 연상시킨다. 정운면은 자신의 그림에 간혹 ‘서석산방에

서 그렸다’라고 써놓았는데, 정운면의 거처 혹은 작업실이 무등산 근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에 그려진 바위기둥들은 입석대나 서석대가 아닌가 싶지만, 돌기둥이

병풍처럼 펼쳐진 모습은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를 닮았다. 광석대라 불리는 이곳은

서석대, 입석대와 함께 3대 주상절리로 꼽힌다.

기이한 기둥모양의 바위가 서있는 중앙의 큰 산과 근경 사이에는 정자와 초가집

한 채가 있고 그 뒤로는 대나무가 울창하다. 초가의 주인은 방문한 벗과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원래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 앞에는 규봉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화가는 이를 규봉암 대신 선비가 머무는 공간으로 대체하였다.

화면 중앙의 바위산은 마치 튀어나올 것처럼 묘사되어 있고 그 위의 수목들은 빽

빽하게 가지를 뻗고 있다. 바위산 뒤쪽 먼 산들은 습윤한 안개로 아스라이 처리되

어 있다. 주변의 경물은 중심을 향해 마치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느낌은

오른편에 서있는 바위가 마치 중앙을 향해 기울어진 것처럼 표현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이다. 이를 화폭에 다 담기 위해 시점을 부감법(俯瞰法)으로 표현하였다. 그래

서인지 깊고 내밀한 곳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죽림청우>는 화면 가득 꽉 찬 구도와 전 화면을 아우르는 푸른색의 색점에 압

도되는 그림이다. 제목처럼 대나무 숲의 비 내리고 갠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

전체에 푸른색과 초록색의 색점을 하나하나 찍어 메웠다. 근경에는 다양한 빛깔의

연두색, 초록색, 청록색 등을 사용해 표현된 나무들과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

등이 매우 섬세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정자와 초가집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과 화면 오른쪽 절벽 표현도 약동적이다. 마치 인상주의 작품을 보는 것 같다.

정운면은 조선미술전람회에 <묵매>를 시작으로 여러 번 입선을 하면서 화명을

쌓았고, 특히 매화그림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1920년대 후반 소정 변관식(小亭 卞

寬植, 1899-1976)에게 산수화를 배운 후 30년대 초 서울을 왕래하면서 서화협회

에 정회원으로 참여하였으며 후소회(後素會)나 청전화숙(靑田畫塾)의 서울의 주요

화가들과 교유하며 당시 중앙화단에 이식된 일본화풍에 대한 새로운 미감과 양식을

추구하였다. 정운면은 1938년 허백련과 함께 연진회에 참여하면서 20세기 초 허백

련과 함께 광주전통화단을 이끌었다. 변관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전통남종화풍을 섭

렵하고 거기에 화단의 새로운 화풍을 접목해 개성적이고도 참신한 작품을 보여준

그는 전통화풍을 중시하던 광주화단에서 철저한 전통주의보다는 시대적인 표현을

작품에 담으려고 했다. 정운면의 작품은 ‘동강바람’이라 불릴 정도로 색다른 신감각

을 보여주며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해 광주 전통화단을 이끈 주요 화가로 평가된다.


김 소 영 (한국미술사, 미술사학자)